성적자기결정권?  아직도 생소한 우리 나라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나타난지는 참 오래됐다. 

80년대까지 형법학계에서는 '성적 자유'라는 용어는 있었지만...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형법 개정을 전후 하여 '정조'라는 개념을 형법에서 축출한 뒤 부터다. 

강간죄가 보호하는 법적 이익으로 '정조'나 '성적 자유'가 아닌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확립되면서 강간죄에 대한 구성을 달리하고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관계정립을 다시 해야할 필요가 생겼으나 형법학계는 '성적자기결정권' 이라는 것을 구체적 권리가 아닌,  추상적 권리로 이해하면서 아무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즉, 강간죄가 보호하는 법적 이익이 예전에는 '정조'였으나 이제는 강간죄가 보호하는 법적 이익이 '성적자기결정권'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정조'가 침해되지 않더라도 '강간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즉,  1. 남자가 트렌스젠더 여성의 '인공 질'이나 '항문'이나 '입에' 강간하더라도 강간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여자가 단독 정범형태로 남자를 강간하더라도 강간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남자가 여자의 항문이나 구강에 강간하더라도 강간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 남자가 남자의 '항문'이나 '입'에 강간하더라도 강간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 남편이 아내를 강간하더라도 강간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는 그간 이 모든 행위를 강간죄로 처벌하지 않고 강간죄보다 처벌의 수위가 낮은 '강제추행죄' 내지 '폭행죄'로 처벌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추상적 권리로 이해했기 때문이고,  위에 나열한 행위로는 '정조'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조관념'이라는 것이 헌법전과(1980년 헌법 개정시 폐기됐다) 형법전에서는(1995년 형법 개정시 폐기됐다)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아직 법관의 머리 속에 또아리 틀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 나열한 5가지 행위 유형 가운데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는 현재 강간죄의 조문에서 행위객체로 '부녀'로 명시된 점 때문에 추가적인 법조문 개정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한다.  그렇지만 '정조'개념이 폐기된 상황에서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을 구체적 권리로 이해하면 추가적인 법조문 개정도 뒤 따라 오는 것이 타당하다.  1번, 3번, 5번의 행위 유형은 현재의 법조문상에서도 얼마든지 '강간죄'로 처벌 될 수 있다.

형법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이 추상적인 권리로 이해되어왔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성적자기결정권'이 구체적 권리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성매매에 관한 법률'이다.

'청소년성매매에 관한 법률'에서는 질내 삽입섹스와 항문 삽입섹스, 오럴섹스를 똑같이 취급한다.  청소년의 정조침해가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침해가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의 개념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다음 포스팅을 참조 ▶ http://telling7star.newsboy.kr/33

그저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강간죄를 인정하는 지법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18일 트렌스젠더인 김 아무개(58·부산시 부산진구)씨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주거침입 강간 등)로 기소된 신 아무개(28)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서 아쉬운 점은  생물학적 남성인 트렌스젠더 여성을 여전히 '부녀'로 보고 법리를 구성해 강간죄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간 살아온 이력을 봤을 때, 여자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한 것인데.

그렇다면 트렌스젠더 여성이 된 지 얼마되지 않은 생물학적 남성을 강간했을 때는 이번 판결에서의 법리가지고는 강간죄가 인정될 수가 없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ps: 많은 언론 보도에서 '우리 법원이 트랜스젠더에게도 강간죄를 인정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법원이 트랜스젠더에게 강간죄를 인정했다'고 하면 오보가 된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면 강간죄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ps2: 필자가 20년 전부터 주구장창 주장해온 이야기다.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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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수광부 이승훈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배우자사이의 강간죄 인정의 문제

지난 2005년 6월, 필자는 배우자 강간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KBS2 TV의 생방송 프로그램 '주부,세상을 말하자' 에 출연했다. 평소 성상담 카운셀러, 기자 등의 생활을 하면서 배우자 강간 문제와 함께, 정조관념에 매몰된 한국 법조계를 비판하는 글을 자주 써온 것이 알려져 방송국에서 배우자 강간죄 도입 찬성측 토론자로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당시 방송에서는 배우자 강간죄 도입을 찬성하는 토론자로 나선 이모 변호사가 "최근 몇십년 동안 (1970년대 이후) 우리 법원 판결이 부부강간 문제를 다룬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부부강간 문제를 다루긴 다뤘다. 다만 그 사건은 강간사건이 아닌 살인사건이었다.  이른바 'ㅅ모씨 남편 살인사건'

'ㅅ모씨 남편 살인 사건'은 1970년대 이후 수면아래 존재했던 배우자 강간의 문제를 다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든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신모씨 사건을 간단히 소개하면,

지난 2001년, 결혼생활 12년 동안 남편의 폭력과 성적 학대에 시달린 ㅅ모씨(당시 34세)가  친정으로 피신한 뒤 이혼 소송을 제기하자 ㅅ모씨의 남편은 그녀가 머물던 친정으로 찾아가 이혼소송 취하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흉기로 신씨를 위협해 강제로 옷을 벗긴 뒤 강간하려 했다.

ㅅ모씨의 남편은 칼을 들고서 "섹스에 응하지 않는다면 다리를 그어버리겠다"고 신모씨를 협박했다.  남편의 위협과 섹스 시도에 저항하던 과정에서 ㅅ모씨는 마침 옆에 놓여 있던 칼을 집어들고 남편을 찔러, 결국 남편이 사망했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은 살인의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인정돼 불구속으로 진행됐지만 당시 남편의 행위는 '법적인 강간'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여성계는 본격적으로 배우자강간죄 도입 운동을 펼쳤다. 

이리하여 여성개발원 등 여성계에서는 배우자 강간죄를 도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보수적인 법무부 및  봉건적 정조관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유림세력과 한국 형법학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성권익을 위한 과제 중 중장기과제로 넘겼다.

종래 우리 나라 형법(형사정책)학계에서는 부부간에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다수의 견해였고, 이 태도는 최근까지 유지되어 왔다. 부부간에 강간죄를 인정하는 견해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아직 그 이론 정립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정조관념에 매몰된 봉건적인 법조계와는 달리 국민의 상당수는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4월 ㅈ모씨가 의사인 남편을 배우자 강간죄로 고소한 사건을 계기로 이 사건을 보도하던 한겨레21이  (주)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상대로 부부강간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81.3% 배우자  사이의 강간을 처벌해야한다고 답했고  '배우자 강간'이라는 것이 성립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58%나 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홍미영 의원이 배우자강간죄의 입법을 위한 노력을 펼쳤으나 ㅈ모씨의 항변과 홍의원의 입법 시도에도 불구하고 배우자 강간죄는 인정되지 못했다. 

ㅅ모씨 남편 살인사건 이후 여성계가 배우자 강간의 입법을 위해 노력해온지  10년이 흘렀다. 2009년. 부산지법은 오늘 (16일) 흉기로 위협해 부인을 성폭행한 40대에 대해 강간죄를 인정해 배우자 강간의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떠 올랐다.  대법원 판례가 아닌 지법 판례에서 아니어서 아직 판례로서는 큰 가치가 없으나  1970년대 이후 하급심에서 조차 배우자 강간을 인정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판례다.

배우자 강간죄, 왜 인정되지 못해왔을까?

그동안 여성계와 진보 사회단체에서 배우자 강간죄 인정을 위한 오랜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었던 이유를 법리적 측면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정조관념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봉건 질서의 잔재가 원인이지만 세월이 지나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뀔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게다가 실제로 법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법리의 완벽한 타당성을 가지고 배우자 강간죄 도입 부정이 법리적으로 부당한 것임을 밝혀줘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살펴보면 배우자 강간죄를 도입해서는 안되는 논리적 이유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온 것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현재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해야한다는 상당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국 형법학계, 우리나라의 입법부 및 사법부가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논거는 두가지이다. 첫째가 부부간에는 특수성, 즉 부부간에는 정교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폭행죄와 강요죄가 있으므로 부부간의 강간은 강간죄로 다스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논거를 바탕으로 하여 강간죄의 객체로서 부녀에는 법률상의 처는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 학계의 태도이며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정교의무의 문제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첫번째 논거를 보자. 부부간에는 정교의무가 있기 때문에 강간죄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논거이다. 사실 부부간에는 민법상으로 인정되는 '정교의무'라는 것이 있기에 섹스를 거부하면 그로 인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정교의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부부간의 정교의무는 절대적일까? 아니다.  몸이 아프면 섹스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섹스를 거부할 때 이혼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이유없이 섹스를 거부하고 그것이 장기화되어서 그로 인해 부부간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발전할 때에야 이혼사유가 되는 것이다. 칼을 들고서 "섹스하지 않으면 다리를 그어버린다"며 다가서면서 성기 삽입을 강제로 시도하는 남편에게까지 정교에 응할 의무는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자 강간죄를 부정하는 이들은 봉건적 정조관념이 투철한 사람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부부간에서의 강간에 해당하는 트러블을 단순한 Desire Discrepancy(욕망불일치로 번역할 수 있겠다)의 문제로 오해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중년여성사이트게시판에서 남편의 강제적 섹스요구(갑자기 옷을 찢고 섹스를 한다던가, 수시로 거친 섹스를 하는 식의)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그 고민에 대해서 대답한 중년여성들은 대부분 '부럽다', '자기는 그렇게 되고 싶어도 못되는데 누구 약올리냐' 라는 반응을 보였고 강간이니까 이혼하라거나 강간죄로 고소하라는 견해는 극소수였다. 이 결과를 두고서 부부간에는 강간죄가 필요없다는 것과 결부시키고 있는 몰상식한 기사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주부의 사례는 성상담에서 주된 상담거리 중의 하나인 Disire Discrepancy의 사례이지 강간의 사례는 아니다. 배우자 강간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좀 더 깊고 넓힐 필요가 있다. 강간당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입장을 고려해야만 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의 성격과 보호범위의 문제


둘째, 폭행죄와 강요죄가 있기 때문에 강제적인 성행위가 강간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강간죄로 다스리지 않고 폭행죄와 강요죄만으로 다스리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법논리적으로 볼 때 일견 타당한 말이다.  사실 폭행죄와 강요죄로 배우자에 대한 강간을 실제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배우자 강간죄가 인정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형법학계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까지 성적자기결정권보다 훨씬 좁은 개념인 '성적자유'가 성적자기결정권을 대신하고 있었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소개되고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관해서는 성적자유라는 용어는 거의 대부분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시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성적자기결정권은 행복추구권에서 근거한다. 보수적 형법학자들은 성적자기결정의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을 구별하고 있지 않지만 성적자기결정의 자유는 성적자기결정권의 일 부분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포괄적으로는 성과 관련한 행복추구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성적 자유와, 성생활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와, 성적인 자기(성적정체성)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와, 인격적 성숙을 기초로한 성생활의 가능성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권리 등을 포함하는 인간(남녀를 불문한)의 권리이다.

필자는 우리 나라 법 체계에서 이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1980년 소위 제 5공화국헌법 개정 시부터 도입되었다고 보고 있다. 1980년 헌법 이전에는 헌법조문상에 명시적으로 '혼인의 순결개념'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1980년 헌법에서 혼인의 순결개념을 폐기함으로서 우리 법 체계에 성적자기결정권이 도입된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법 체계 내에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도입된 것은 1980년이지만 형법의 체계 내에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수용된 것은 헌법학계보다 15년이 뒤진 1995년부터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 형법학계가 성적으로 보수적이며, 소위 여성주의 법학 등 진보법학의 힘이 미약한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1995년 개정형법 (현행형법) 第32章의 제목 '강간(强姦)과 추행(醜行)의 죄(罪)'는 원래는 '정조(貞操)에 관한 죄'였다. 그러자 1980년 도입된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형법에 반영되어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제목이 바뀌어진 것이다. 이후 형법 학계에서는 강간죄 등에서 보호법익을 논하면서 기존에 제시됐던 '성적자유'라는 개념을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만 소개했지 그 용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구조가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의 도입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왔다. 그저 성적 자유라는 단어를 성적자기결정권으로 대체하기만 하는 형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의 형법학계가 헌법과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평할 수 있다.

형법학계는 이 성적자기결정권을 다분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권리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은 매우 구체적이다. 즉 성 문제에서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이 성적자기결정권에 의해서 마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예를 들면, 과거 우리 나라의 청소년성교육상의 주된 이념이었던 순결이념을 2001년부터 청소년성교육에서 제외한 것도 성적자기결정권의 역할이다.

또한 현재 청소년성매매에 관한 법률에서는 오럴섹스와 항문섹스등을 질내 삽입섹스와 같은 취급을 하고 있는데  오럴섹스나 항문섹스로도 성적자기결정권은 침해된다는 것은 질내삽입섹스의 경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정조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형법에서는 오럴섹스와 항문섹스는 질내삽입섹스와 구분한다. 정조라는 것은 질내삽입섹스로만 침해될 수 있어서 정조가 침해되지 않는 오럴섹스와 항문섹스의 방법으로는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이 아니었으면 청소년성매매에 관한 법률이 지금처럼 오럴섹스와 항문섹스 등을 질내삽입섹스와 같은 취급을 하도록 제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 형법학계는 1995년부터 이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을 도입하여서 강간과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이라고 하면서도 구체적 사건에서는 즉,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있다. 부부간의 강간을 부부간 강간죄로 인정하지 않고 강요죄와 폭행죄로 취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배우자 강간죄, 이제는 인정돼야 한다

폭행죄에서의 폭행이 어떻게 강간죄에서의 폭행과 같다는 소리를 할 수가 있는가? (전문용어를 써서 말하자면 '불법'의 크기가 다르다.)단순한 신체활동의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이 같다는 소리를 할 수가 있는가?   성적자기결정권은 추상적인 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권리이기에 실제적으로 보호돼야만 한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볼 때 강요죄와 폭행죄로는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부부간의 강간을 강간죄로 다루지 않고 강요죄와 폭행죄로 취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철회될 수 밖에 없으며 법원은 배우자 사이의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현행 우리나라 형법상 강간죄 규정에 ‘혼인 중의 배우자를 제외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설령 남편이 폭력으로서 강제로 처를 간음하였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라는 판례(1970년)에 따라 법조계가 배우자 강간죄 인정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하지 않고 있는데 1980년의 헌법개정, 1995년 형법개정 등으로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이 우리 헌법과 형법의 체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따로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헌법-형법 체계에서도 얼마든지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올 수 있고 이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하다는 뜻이다) 배우자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판례 경향은 앞으로는 폐기되고 배우자간에도 강간죄가 인정되어져야 한다.

이번에는 꼭 배우자 강간죄가 인정되기를 바란다.  

▶ 관련기사 : 부부 강간죄 인정 두고 논란


주 : 필자가 2001년 대자보(www.jobo.co.kr)에 썼던 내용에서 일부 수정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본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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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수광부 이승훈
성폭행에 관대한 법원 판결 태도 언제까지 유지할 건가?

지적 장애를 가진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패륜집안 4명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내리는 비상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국민들의 정서적 인식수준과 차이나게, 전반적으로 성폭행에 대해 관대한 법원의 태도를 이번에도 또 확인하는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 관련기사 : 지적장애 소녀 성폭행 패륜가족 4명 '집유'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법원이 필요이상 관대한 판결을 내린 사건의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으나 그 중에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건이 이 사건과 너무나 비슷한 인화학교 사건이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요보호자를 성폭행했다는 점. 요보호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성폭행했다는 점, 일반성폭행보다 가중처벌해도 모자랄 사건인데도 관대한 처벌이 나왔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인화학교 사건은 지난 2007년 10월 장애학생들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한 김모(61) 광주인화학교 전 교장에 대해 징역 5년과 300만원을, 김모(59) 전 행정실장에게 징역 2년을 구형. 또한 박모(58) 전 보육교사는 징역 1년 6개월, 전모 전 교사(42)와 이모(36) 전 보육교사는 각각 징역 1년씩 구형했고 죄가 확인됐지만 최근 항소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 관련기사 : 광주 인화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

인화학교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패륜집안 성폭행 사건도 납득할 수 없다. 부모없이,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소녀를 같이 데리고 사는 친할아버지(87세)와 큰아버지(57세), 작은아버지(42세), 또다른 작은아버지(39세) 등 일가족 4명이 수년간 성폭행을 해온 사건이다. 그런데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풀어준 것이다.


재판부의 논리를 반박한다

재판부의 집행유예 선고 논리는 한편의 코메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들의 성폭력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중형이 불가피하지만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워왔고 피해자의 정신장애 정도에 비춰 앞으로도 가족인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부모를 대신해서 키워왔다는 점이 감형 사유란다. 이게 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나? 키운 게 아니라 학대한 것이다. 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상태의 혈육인데도 성폭행을 수년간 자행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보는지 납득할 수 없다.

설령 그들이 개과천선을 해서 -그렇게 할 가능성은 1%도 안되겠지만-'정상적인'관심과 도움을 피해자에게 준다고 가정한다고 치자. 피해자가 이미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피해자가 정상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사회보장 조치 명령을 내리지는 못할망정 피해자가 계속 충격을 받을 것이 자명한, 재범의 우려가 농후한 금수의 집안에 유기 방치하는 판결이 과연 정상적인 판결인가? 도대체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 갔는가?

성폭행과 관련해 더 이상 국민들의 법감정과 괴리된 비상식적인 판결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백수광부 이승훈
술마신 상태에서 강간 등의 성폭력을 할 때 다른 사정이 없으면 감형되는 것이 원칙이다. 술을 마시면 시비 판단 능력이 줄어든다고 보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책임을 줄인다고 보는 것이다. 줄어든 책임만큼 감형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말 그대로 원칙이다. 행위의 연속성을 따져서 성폭력 전에 술을 마신 행위가 성폭력과 맥락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나를 살펴본 뒤 양형해야 한다.

맥락적 판단에 따라서 음주행위는 형의 가중요소가 될 수도 있고 감경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된다거나 혹은 가중처벌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성폭력전에 술을 마신 행위가 성폭력과 맥락상 연결되지 않으면 취중 성폭력은 감형되는 것이 맞고, 성폭력 전에 술을 마신 행위가 맥락상 연결돼 있으면 취중 성폭력은 가중처벌 내지는 동등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남자가 고등학교 동창회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그는 만취 직전의 상태에서 귀가하다 으슥한 곳에서 어떤 여자와 마주쳤는데 갑자기 성욕이 일어나서 성폭력을 했다고 하자. 이럴 때는 감형된다. 물론 이 때도 그 남자가 평소에 술을 마시면 성욕이 동해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버릇이 있다고 하면 감형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서, 어떤 남자가 약간의 일면식이 있는 여자와 같이 술을 먹다가 성욕이 동해서 술을 같이 마시던 그 여자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하자. 이 때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감형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아가 그 남자가 애초에 성폭행을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술을 마셨다면 음주 행위는 형의 가중 요소가 되는 것이 맞다.

이경환 군법무관은 성범죄에 대한 양형을 결정할 때, “술을 마신 정황은 범행을 용이하게 하고 죄의식을 약하게 한다는 점에서 감경요소가 아닌 가중요소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일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술을 마셨을 때 시비 판단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 통념이다. 시비 판단 능력이 줄어든 만큼 책임도 줄어든다고 보는 것이 형법의 원칙이다. 이러한 통념과 원칙에 따라서 술을 마신 정황은 감경요소가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문제가 된 사례를 보면, 범인들이 미리 클럽과 호텔을 예약해둔 상태에서 여성들을 유인해 술에 취하게 한 뒤 윤간하고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삭제하기 위해 피해자의 핸드백을 절취한 사건이다. 법원은 "젊은 나이의 피고인들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해 (관대하게) 양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판례는 음주행위와 성폭력이 맥락적으로 연결돼 있고 음주행위가 의도적이었다는 점을 파악하지 않고 감경요소 부분만 판단했기 때문에 잘못된 판례다. 위 사안에서 음주행위는 감경요소가 되어서는 안되고 가중요소가 되는 것이 맞다.

젊은 나이라는 것은 감경요소가 될 수도 있으나 성년인 이상 감경할 꺼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 성적호기심을 참지못해 충동적으로 저지른 부분은 감경요소도 아니고 가중요소도 아니다.

정리하자면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음주행위와 성폭력간의 맥락적 판단에 따라 음주행위에 감경/가중 판단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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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수광부 이승훈